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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방제와 병법

속전속결이 필요한 순간, 졸속이라도 좋다 '마황탕'

by 북드라망 2015. 5. 27.



졸속(拙速)정치학

– 마황(麻黃湯) 




속전속결의 병법과 치법

전쟁을 하면서 승리에 시간을 끌면 병기가 둔해지고 사기가 꺾여서, 성을 공격할 때 힘이 다한다. 오랫동안 전쟁을 하면 국가의 재정이 부족해진다. 병기가 둔해지고, 사기가 꺾이며 힘이 다하고 재화가 바닥나면 제후들이 피폐를 틈타 일어나니, 비록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그 뒤를 수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졸속(拙速)은 들어봤지만, 교묘하게 오래 끄는 것은 보지 못했다. 무릇 전쟁을 오래하여 국가에 이로운 경우는 없었다. 

- 손무, 『손자병법』, (리링 『유일한 규칙』, 임태홍 옮김, 글항아리)에서 재인용


흔히 사용되고 있는 ‘졸속’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단어의 뉘앙스에서도 느껴지듯이 별로 좋은 뜻은 아니다. ‘빠르긴 한데 졸렬하고 어설프다’는 뜻으로 뉴스에서는 대개 부실공사나 탁상행정 등에 대한 조롱과 질타의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손무가 사용한 졸속이란 말도 결코 좋은 뜻은 아닐 것이다. 전쟁을 졸렬하게 끝내는 것이 어찌 바람직하겠는가. 하지만 손무는 전쟁은 졸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속전속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국가의 재정이 크게 소모된다. 그것은 적과 아군 모두의 전력이 낭비되는 일이며 나아가 백성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손무는 전쟁은 졸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속전속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질병의 치료에서도 속전속결이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감기처럼 외사(外邪)에 의해 빠르고 강력하게 발병한 것일수록 그렇다. 감기에 쓰는 약들 중에서 ‘마황탕(麻黃湯)’이 그런 치법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방제다. 마황탕은 장중경의 저작으로 알려진 『상한론(傷寒論)』이라는 책에서 소개되었다. 『상한론』에서는 육경변증(六經辨證)이라는 독특한 진단체계가 서술되어 있다. 마황탕은 여섯 단계의 육경변증 중 첫 번 째 단계인 태양병(太陽病)에 쓰인다.


태양병(太陽病)으로 인해 두통, 발열, 신통(身痛), 요통, 관절통, 오풍(惡風), 무한(無汗), 천식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는 마황탕을 주로 쓴다.

- 장중경, 『상한론(傷寒論)』, 직접 옮김, 宋本 35조


태양병은 사기(邪氣)가 체표에 머물러 있는 초기단계의 병증을 말하는데, 감기 초기에 흔히 나타난다. 감기 초기에는 정기(正氣)도 왕성하고 외사(外邪)의 세력도 강하다. 그래서 정기와 사기가 한 판 충돌하는 감기 초기에는 병증이 강렬하다.


태양병의 증상은 맥(脈)이 부(浮)하고 머리와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통증과 오한이 있다.

- 같은 책, 宋本 1조


아, 이 태양이 아니다.


태양병은 크게 태양중풍(太陽中風)과 태양상한(太陽傷寒), 이렇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태양중풍은 상술한 태양병증과 함께 열이 나고 땀이 나는 증상이 더해져 나타난다. (여기서의 중풍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뇌졸중과는 다르다.) 땀이 나는 이유는 체력이 약해서이다. 보통 풍한사(風寒邪)가 들어오면 차가운 기운이 땀구멍을 막는다. 하지만 체력이 약하면 땀구멍을 닫는 기운조차 약해져서 땀이 난다. 상한론에서는 이럴 때 계지탕(桂枝湯)을 쓴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계지탕이 잘 맞는 사람들은 “나약한 선비 혹은 『홍루몽』에 나오는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이 몸이 약하고, 다정다감한 임대옥의 이미지와 비슷하다.”(황황, 『중의 십대류방』, 남경중의약대학 청량회 옮김, 집문당, 23쪽) 발열이 심하지 않은 초기 감기에는 대체로 땀을 내보면서 풍한사(風寒邪)를 몰아낸다. 그러나 위의 경우처럼 초기부터 땀이 나는 경우에는 땀이 과도하게 배출되지 않도록 조절하되 그렇다고 완전히 땀을 멎게 해서는 안 된다. 계지탕에는 이러한 복잡한 메커니즘을 조절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태양상한은 태양병증과 함께 두통, 발열, 관절통, 천식 그리고 땀이 나지 않는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를 말한다. 태양중풍과 가장 큰 차이점은 땀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땀이 나지 않는 것은 한사(寒邪)로 인해 표피의 땀구멍(腠理)이 움츠려들었기 때문이다. 땀구멍이 수축되는 증상은 평소에 어느 정도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때는 마황탕을 쓴다. 계지탕에 어울리는 체질이 대옥이라면 반대로 마황탕의 체형은 “피부가 누렇고 비만한 자나 검고 비만”(위의 책 61쪽)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수호전』에 등장하는 흑선풍 이규, 화화상 노지심 같이 체격이 단단하고 피부가 거무스레하며, 술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큰 조각의 고기를 뜯어 먹는 영웅타입”(위의 책 23쪽)이다. 이들은 계지탕보다는 마황탕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마황탕의 치법은 계지탕 보다는 비교적 간단하다. 발한(發汗), 즉 땀을 내게 하는 요법을 쓰면 된다. 닫힌 땀구멍 안쪽 표층에서 한사(寒邪)와 정기(正氣)가 한 판 붙었다. 이 전투의 강렬함 때문에 오한과 발열, 몸살이 일어난다. 이때 마황탕을 복용하면 땀구멍이 열리면서 땀이 배출되는데, 땀이 빠져나오면서 뒤엉켜 있는 사기와 정기의 무리들을 같이 내보낸다. 이렇게 땀이 밖으로 나가면서 순식간에 전쟁의 상황이 종료된다. 땀은 혈(血)에서 나온다. 혈은 기(氣)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땀이 배출되면 기운도 덩달아 빠져 나간다. 


마황탕을 써서 땀을 내고 나면 '전쟁은 종료된다.'


마황탕은 땀과 함께 정기를 내보내는 자기희생이 따르지만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낸다는 점에서 위에서 인용된 손무의 입장과 같다. 정기를 채우지도 않고 졸속으로 사기와의 싸움을 끝냈지만 병이 더 진행되지 않았다. 이제 정기를 채울 차례다. 몸을 쉬게 하고 서서히 영양을 보충하거나 보익제로 몸을 보하면 정기가 회복될 것이다.  



졸속의 지혜와 용법

일을 졸속으로 처리하면 할 일이 또 남는다. 불가피하게 속전속결로 처리했으니 미흡한 부분은 사후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 마황탕도 정기의 보충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이런 점 때문에 진사탁은 마황을 쓸 때 인삼을 조금 넣는 방법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마황으로 하여금 단지 사기(邪氣)만 흩고 또한 발한(發汗)은 하지 않”(진사탁, 『본초신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재활의학과 교실 옮김, 군자출판사, 327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땀을 내지 않고 사기만 제거할 수 있다면 정기의 손실을 막을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러면 사기는 없애고 정기는 손실은 최소화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경우엔 치료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땀의 배출과 더불어 전쟁이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마황에 의해 일부의 사기가 제거되고 나머지는 회복된 정기에 의해 천천히 퇴치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급성병 치료의 핵심은 시간성에 있다. 급성으로 치고 들어온 사기는 오래지 않아 변이를 일으킨다. 장중경은 『상한론』을 지을 당시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장중경 일가 중 3분의 2가 죽었을 만큼 역병의 문제는 심각했다. 『상한론』 2조에는 “상한(傷寒) 2~3일이 지나 양명증(陽明證)과 소양증(少陽證)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병이 전이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대개는 상한 초기에 2~3일이 지나면 다른 병으로 전이된다는 말이다. 상한이란 한사(寒邪)에 손상된다는 뜻으로 외사(外邪), 즉 밖에서 침투한 사기(邪氣)로 인해 발병한다. 서양의학적으로는 가벼운 감기몸살에서 심각한 법정 전염병까지, 대개 고열을 동반한 감염성 질환을 의미한다. 어떤 위험한 전염성 질환의 경우엔 촌각을 다툴 만큼 병의 진행속도가 빠르다. 이때는 병이 다음 단계로 더 진행되지 않도록 처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병은 깊어지고 치료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무리되지 않은 것은 사후에 처리하더라도 당장은 속전속결로 병과 싸우는 것이 최선이다. 마황탕이 졸속이지만 빠른 전법을 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마황탕의 조문을 보면 졸속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땀이 나지 않는 사람(체력을 갖춘 자)에게 한정시키는 것이 바로 그렇다. 땀으로 기운을 배출해도 위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인삼을 써서 정기의 회복을 함께 도모하는 것도 훌륭한 생각이지만 ‘상한’이라는 독특한 조건에서는 격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감기만 해도 그렇다. 감기는 약을 먹지 않아도 대개 7일 정도 안에 낫는다. 일주일을 먹어야 감기가 낫는 약이라면 차라리 안 먹는 게 나을 것이다.


일주일이면 나을 감기라면 약을 안먹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급성병 치료의 핵심은 시간성에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기왕이면 좋은 조건에서, 기왕 일을 할 거라면 꼼꼼하게 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미덕이 된다. 이런 시각에서 ‘졸속’이란 말은 상대적으로 폄하된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는 중요한 것을 위주로 빨리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대체로 때에 맞춰야 할 때가 그렇다. 잘하겠다고 마무리 시간을 계속 지연시키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건물을 짓는 등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공사기한과 관계없이 철저하게 점검하고 끝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예컨대 밥을 먹을 때마다 상을 근사하게 차려 먹을 순 없다. 그렇게 먹으려면 품과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남는 음식이 많을 것이다.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매 끼니를 대충 때워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밥 먹는 건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식사야말로 땅의 기운과 섞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고마운 일이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박한 음식이 중요하다. 한두 가지 반찬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로운 식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기왕이면’이라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이, 기왕이면 몸에 좋은 걸로. 맛있고 좋은 걸 먹겠다는 욕심이 어찌 나쁜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런 욕망은 ‘먹는다는 것’의 본래면목을 압도한다. 즉, 맛있고 좋은 음식에 대한 마음의 끌림이 음식으로 인해 생명이 유지된다는 자연의 기본 이치를 망각하게 한다. 그러면 먹는 행위에 대한 고마움은 잊게 되고 맛의 쾌락과 부가 기능에 대한 충족감만 남게 된다. 장식이 기본을 압도한 것이다. 인테리어도 비슷한 맥락으로 주거에 대한 자연성을 억압한다. 집은 바깥의 육기(六氣. 풍화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를 피해서 몸을 안전하게 쉬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인테리어에 대한 욕망은 이런 소중함을 잊게 하고 예쁘고 근사함에 대한 뿌듯함만이 일어난다. 전편에서도 강조했듯이 쾌락과 뿌듯함을 일으키는 이런 산만한 욕망은 기의 낭비를 초래한다. 또한 이 항진된 설렘과 짜릿함은 금방 식어버리는 까닭에 삶의 공허함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먹는 일’과 ‘주거하는 일’에 장식을 제거하면 많은 기운이 절약된다. 이 기운을 모아 좋아하는 일과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공허함을 떨구고 생명력을 진작시키는 일일 것이다. 


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공부와 일을 하는 것도 조율의 측면에서 졸속의 지혜를 응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졸속한 공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할 수 있다. 학문의 길은 심연으로 파고 들수록 더 깊고 넓은 세계가 펼쳐진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끝날 수 없는 저 광대한 장 안에서 서두를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공부에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학문의 심연은 일상의 리듬을 지켜가는 긴 호흡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다. 이 일정한 리듬을 지키기 위해선 때에 맞춰 끝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학생은 계획된 진도에 따라 리듬을 맞춰야 하고 작가는 약속한 원고 기한에 맞춰 스스로 계획한 매일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꼼꼼하게 잘하는 것보다는 시간에 맞추는 것이다. 시간에 맞추다보면 졸렬한 글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리듬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글쓰기의 본래면목은 ‘원고지를 채우는 것’이다. 더 잘 쓰고 싶은 욕망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것은 장식이 기본을 압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리듬 안에서 최적의 글이 나올 수 있도록 분량을 조절하고 집중력을 발휘하며 산만한 욕망들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살아내진 못한다. 우리의 계획은 예기치 못한 변수와 유혹 앞에서 항상 무산되기 일쑤다.(이 원고도 약속한 날짜는 좀 어겼다.) 이럴 때 일상의 리듬을 살리기 위해 졸속이라는 지혜를 발휘해도 좋다. 


때에 맞춰 끝내기 위해 때로는 '졸속'의 지혜를 발휘해야할 때가 있다



시간과 관계없이 끝까지 밀어붙여 대결해야 할 때가 있다. 여기서 졸속은 졸렬하기 짝이 없는 나태함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속전속결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일상은 때를 지켜 살아야 하는 주기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졸속은 오히려 지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졸속은 후처리의 책임을 남긴다는 점에서 생명력의 지속을 자극한다. 후처리는 이제 새로운 시절과 섞이면서 새로운 사건이 된다. 후처리가 새로운 일의 발단으로 전변되는 것이다. 이미 새로운 일이 펼쳐져 있다는 것. 이건 나아갈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생명력은 닫힌 곳에서 저문다. 퇴직 후 급속하게 늙어가는 것도 육체와 마음의 길이 닫히기 때문이다. 마황탕은 졸속으로 사기를 물리쳤지만 정기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감기가 나을 즈음엔, 기운은 약해져 있지만 몸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다짐과 삶의 의지가 발동한다. 이것이 바로 졸속의 후처치가 새로운 생명력을 추동하는 것이다. 남겨진 문제는 조율이다. 졸속의 용법이 나태의 정당화나 삶의 풍성함에 대한 냉소로 사용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기왕이면’과 ‘뭐 그렇게 까지’ 사이에서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


글_도담

낭송 손자병법 / 오자병법 - 10점
고미숙 기획, 손무.오기 지음, 손영달 옮김/북드라망
유일한 규칙 - 10점
리링, 임태홍/글항아리
본초신편 - 10점
진사탁 지음/군자출판사
중의 십대류방 - 10점
황황/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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