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발! 인문의역학! ▽/장·주·걸·쓰

[임신톡톡] 임신 중 증상 - 불언, 태아울음

by 북드라망 2015. 5. 14.


임신 황당 증상 당황하지 않고 빡!

- 불언, 태아울음 -



임신은 처음부터 유경험자로 출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초보자면서 동시에 엄마가 되는 코스는 험하고 멀기만 하다. 이렇게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인데 거기다 예상할 수 없는 증상이 내 몸에서 일어난다면 더더욱 당황할 것이다. 예컨대 이런 증상이라면 어떻겠는가. 임신부가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된다면?


또 뱃속에서 아이의 울음이 들린다면?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태아가 뱃속에서 운다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 않는가. 아무튼 이렇게 황당 증세와 만난 산모는 겁이 덜컥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몸속 태아도 건사하기 힘이 드는데 예측 불허 증상들의 역습이라니.


              헉~ 임신 중 예측 불허 증상들의 역습!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앞서 말한 증상들은 동의보감에 당당하게 출현하는 것들이니 말이다. 동의보감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안심되지 않는가. 솔직히 나만 겪는 게 아닌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나만 겪은 일인 양 비련의 주인공으로 살다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친구를 만났을 때 오는 편안함. 그때 고민은 숨길 일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비전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건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겪은 일을 사심 없이 관찰하고 그것을 나누면 된다. 그렇게 될 때 나를 붙들었던 욕심을 알아챌 수 있고 이전과 다른 스텝을 밟을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존재의 탄생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병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황당한 증세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치를 궁구하다 보면 상황을 거부하거나 피하려는 마음보다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당황하지 않고 자유 빡~을 누리려면 좀 힘들더라도 황당 증세를 잘 탐구해야 한다는 말씀! 그럼 이제 임신부가 말을 못하는 증상과 뱃속에서 아이 울음이 들리는 증상을 찬찬히 탐구해 보기로 하자.



임신부가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된다면?


『내경』에는 “임신 9개월에 말을 못하는 것은 무슨 병인가” 기백(岐伯)이 대답하기를 “포의 낙맥(絡脈)의 기가 끊어진 것이다. 포의 낙맥은 신(腎)에 달려 있는데 소음경맥(少陰經脈)이 신을 통하여 올라가서 혀뿌리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료하지 않아도 10달이 되면 회복된다.”고 하였다. 또 주해에는 “해산하면 말을 할 수 있으므로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씌어 있다.


○ 임신부가 벙어리가 되어 말하지 못하는 데는 사물탕(四物湯, 처방은 혈문에 있다)에 대황, 망초 각각 4g을 더 넣어 물에 달여 찌꺼기를 버리고 꿀을 조금 타서 식힌 다음 수시로 먹으면 심화(心火)가 내려가고 폐금(肺金)이 시원해지면서 말할 수 있게 된다.

─ 국역 동의보감3, 잡병편, [입문], 한불학예사


임신부가 말을 못하는 것은 임신 9개월에 나타나는데 포(胞)의 낙맥(絡脈)이 끊어진 게 원인이다. 여기서 포와 낙맥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선 포부터 살펴보자. 한자의 어원으로 보면 태아(巳)가 아기 주머니(⼓)에 싸인 것에 몸을 뜻하는 고기 육(月)이 더해져서 아기 밸 포, 아기 주머니 포의 의미이다.


동의보감에서는 포를 단전이라고 하며 남자는 정(精)을 저장하여 자식을 기르고, 부인은 포(胞)를 달고 있어서 자식을 갖는데, 모두 낳고 기르는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포를 대지가 만물을 키우듯이 생명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낙맥은 또 무엇일까. 낙맥은 단어 자체만으로는 생소할 것이다. 이건 어떤가. 경락하면? 경락 마사지가 생각나면서 조금 친근해지기 시작한다. 경락은 경맥과 낙맥이 합해진 것이다. 우리 몸에는 기혈이 흐르는데 그 통로가 경맥과 낙맥이다. 경맥이 큰 줄기를 이루는 기혈의 소통로라면 낙맥은 경맥을 상호 연결하는 소통로이다. 경맥을 내 몸에 난 고속도로로, 낙맥을 지방도로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생명의 근원인 포에서 낙맥이 끊겼다니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기혈이라는 차가 고속도로(경맥)는 갈 수 있는데 지방도로(낙맥)는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12개의 경맥 중 9달의 태는 신장 경맥이 기르는데, 신장 경맥은 태아를 완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산모는 기본적인 것만 경맥을 통해 기혈을 소통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태아를 위해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니 낙맥으로는 기혈을 보낼 여력이 없는 것이다. 간단 정리하자면 임신부는 몸을 절전형으로 만들어 태아를 기르는데 많은 기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 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다시 동의보감으로 돌아가 보자. “포의 낙맥은 신(腎)에 달려 있는데 소음경맥(少陰經脈)이 신을 통하여 올라가서 혀뿌리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다.” 말을 못하는데 신장 경맥, 혀뿌리, 말이 왜 한 평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말이 나오는 원리부터 짚어보기로 하자.


대개 말이란 목이나 입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동의보감은 전혀 다르게 보고 있다. 정신이 나오는 심장은 목소리의 주인이라고 한다. 내가 어떤 말을 하겠다는 정신 작용이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라는 것. 폐는 목소리의 문이다. 내가 말을 한다는 것은 기운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기운의 출입을 주관하는 폐가 호흡을 통해 문의 역할을 해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심장과 폐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신장은 목소리의 근원으로 만약 신장이 허하면 기를 받아들여 제자리로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기가 치밀어 올라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말이란 심장, 폐, 신장이 함께 만드는 결과물인 것이다.


이제 말의 메커니즘을 이해했으니 포의 낙맥이 끊어져서 소리가 안 나오는 원인을 추적해보기로 하자. 임신부는 아이 완성에 총력전을 기울이느라 낙맥을 차단했었다. 우선 신장에서 유입되는 기혈 통로인 낙맥(지방도로)이 끊겼으니 경맥(고속도로)으로 기혈을 운반해야 한다. 고속도로가 뚫렸다고 한들 지방도로로 분산될 수 없다면 고속도로라도 정체되기 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산모의 경맥이 과부하가 걸려 정체되면 신장 기운이 심장의 싹인 혀뿌리로 올라가야 말이 나오는데 기운이 꽉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 동의보감의 해법은 매우 쿨하다.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것. 치료하지 않아도 해산하면 저절로 회복될 테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상심은 마시라. 동의보감은 말문을 트이게 하는 처방도 알려주신다. 말문이 트이게 하는 약이라 비방이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정공법의 처방을 제안하고 있다.




아이를 만드느라 기운이 없으니 기혈을 생성하는 약(사물탕)에다 막힌 기운을 내리는 약재(대황과 망초)를 넣고 꿀(기운 보강)을 타서 먹으면 정체된 화기가 내려가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그러니 말문이 트이게 하는 핵심은 온몸의 기혈의 통로를 뚫어주는 것. 여기에서 동의보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원리, 통즉불통(通卽不痛 不通卽痛 :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은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뱃속 태아가 운다고?


임신부의 뱃속에서 태아가 우는 소리 같은 것이 나는 것은 탯줄에 있는 매듭을 태아가 입에 물고 있는데 임신부가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잡을 때 태아가 입에 물고 있던 것이 빠져 나오기 때문에 난다. 임신부가 낮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허리를 굽히면 태아가 다시 탯줄을 물게 되므로 이런 소리가 곧 멎는다.

─ 국역 동의보감3, 잡병편, [정전], 한불학예사


이번엔 임신 중 다른 황당 증상이다. 임신부가 높이 올라가 물건을 잡으면 배에서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태아의 울음소리라는 것. 이게 뭔 말인가? 태아는 원래 엄마의 기혈을 받느라 탯줄을 입에 물고 있는데, 임신부가 높이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몸을 펴면 태아가 물고 있던 탯줄의 매듭이 빠져서 울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임신부 배 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겁내지 말고 허리를 굽혀 땅에 있는 물건을 줍는 동작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몸을 숙이면 태아가 다시 매듭을 물어서 울음을 뚝 그친다는 것.


혹자는 뱃속 아이가 운다니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현대 과학에서 아기의 첫 울음이 분만실이 아닌 ‘뱃속’에서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3주 된 태아에게 진동을 가했더니 깜짝 놀라는 반응과 함께 입을 벌리며 턱을 떠는 등 울음과 관련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경이롭기만 하다.


으앙~ 아기의 첫 울음은 뱃속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한유의 글이 생각났다. 모든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해 소리 내어 운다는 글. 언뜻 보면 한유의 시대 불화성 멘트 같지만 그것은 결코 불만의 글이 아니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조차 평정을 위해 우는 것처럼 만물은 살기 위해 우는 존재라는 것. 태아가 얼마나 절박하면 배 속에서까지 울까를 생각하니 한유의 글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누구나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원초적 욕망이 있음을 한유의 글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 내 운다. 초목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 내 울고, 물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치면 소리 내 운다. 솟구치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내달리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에 불질을 했기 때문이다. 금석(金石)은 본디 소리가 없지만 두들기면 소리 내 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어쩔 수가 없어서 말을 하는 것이니,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고, 우는 것은 가슴에 품은 바가 있어서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들은 모두 평정치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 한유문집 1권, 「맹동야(孟東野)를 보내는 글」, 문학과 지성사, 361쪽


아이도 울고 싶어서 울었겠는가. 한유의 말대로 ‘도무지 어쩔 수 없어서 울었을 것이다. 평정하지 못하니 평정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엄마 뱃속에서 울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또 다른 울음이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우는 울음이다. 뱃속에서는 산소를 엄마 탯줄로 공급을 받았지만, 밖에 나와서는 스스로 호흡해야 하므로 폐 속에 있는 세포들이 터지면서 운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내가 외부 기운과 만나기 위해 도무지 어쩔 수 없기에 울음이 터지는 걸 거다.


만일 아기가 울지 않는다면 일부러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울게 해야 한단다. 우는 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하나. 이때 우는 건 아파서가 아니라 맞는 소리에 놀라 운다고 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통증이 아니라 ‘소리’라는 것. 만물은 모두 우는 존재라는 한유의 글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이 원리를 이미 엄마 배 속에서 터득하고 있다니 생각할수록 태아가 기특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임신 중 말 못하는 증상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배 속에서 들리는 이유까지 살펴보았다. 병의 원리를 찬찬히 살펴보니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살면서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내 몸을 믿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고, 배 속에서 소리가 나더라도 만물은 모두 우는 존재이니 그 소리를 경청하면서 내 몸을 신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마음을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황당한 증세나 사건이 오더라도 당황함 없이 지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글_박장금(감이당)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