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우주, 자연, 생명의 상상력을 탐구하라!

무얼 보고 계세요?
─ <생명과 과학>을 시작하며

신근영
(남산강학원 Q&?)

카드게임


자, 우선 간단한 게임으로 시작해 볼까요. 제가 여러분들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아래 6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이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선택하세요. 아, 잠깐! 무엇을 선택하셨는지 절대 말하지도, 가리키지도 마세요. 혼자 속으로 조용히 ‘이거’라고 찍어주세요. 제가 그 찍은 카드를 맞출 겁니다. 그럼 조용히~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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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셨나요? 그럼 이제 무엇을 선택하셨는지, 외쳐주세요. 음…크게 소리를 내실 수 없는 분은 작은 목소리로라도 좋습니다. 저야 당근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걱정 마시구요. 선택하신 것을 말씀하셨나요. 이제 제가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합! 그럼 6장의 카드 중 여러분이 선택하신 그 카드를 없애보겠습니다.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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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맞죠?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맞췄죠? 하하하. 제가 어떻게 여러분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제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을까요. 사실 이건 저의 놀라운 능력이라기보다는 안타깝지만 우리의 작은 무능력으로 인한 마술입니다. 앞의 6장의 카드와 한 장을 뺀 5장의 카드를 비교해 보세요. 아셨나요? 네, 맞습니다. 앞과 뒤의 카드는 모두 다릅니다. 앞의 6장의 카드 중 어떤 것을 선택하셔도, 뒤의 5장에는 들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카드 6장을 모두 바꿔버렸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오로지 우리가 선택한 카드만을 머리에 담아둡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카드들은 전혀 마음에 남지 않지요. 내가 선택한 것만이 있는가 없는가에만 집중해 있어서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지금 내 손에 든 카드패 이외의 것은 보지 못하는 무능력. 이것이 이 게임의 비밀이었습니다. 

우리의 지각은 선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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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어느 날 아침 얼굴에 솟아난 뾰루지! 하지만 뾰루지는 그 전부터 꾸준히 얼굴의 기름(?)과 함께 태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택적 지각' 때문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ㅋ).

우리가 보는 게 거짓은 아닙니다. 우리는 감각한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없답니다. 어쩌면 지각해서는 안 되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매일 벌어지는 미세한 변화들을 모두 지각할 수 있다면 일상을 살아가기가 몹시 곤란해질 겁니다. 이를테면 우리 얼굴은 매일 매일 변합니다. 그 변화를 모두 지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침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 ‘누구세요’라고 물을지도 모르죠. 혹은 오늘 만난 이 사람이 어제 만난 그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 매번 통성명을 해야 할지도…(^^;;).

선택적 지각이 생물학적인 것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에요.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서도 지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기질, 살아온 환경, 받은 교육 등에 따라 우리는 각기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심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떤 사람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이런 관심에 따른 선택적 지각 또한 필요합니다. 선택적 지각을 못하고 이것저것에 계속 눈을 돌리는 경우, 우리는 ‘산만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선택적 지각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기도 한답니다. 선택적 지각은 기본적으로 ‘동화’와 ‘조절’이라는 메커니즘 속에 있어요. 동화와 조절이란 뭐냐. 간단히 말해 우리는 과거에 인식한 것과의 비교를 통해 지금의 것을 지각한다는 것이에요. 과거에 본 것 중에서 지금 것과 비슷한 걸 찾아서 과거의 것에 동화시키거나, 그런 것을 찾지 못하면 과거의 것을 지금 것과 비슷하게 조절해서 지각하게 되는 거죠. 어느 쪽이 되었든 기준은 ‘과거의 것’이고, 그것의 목적은 ‘하나로 통합’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봐 왔던 것만을 보게 되고, 관심 있는 것만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거랍니다.

선택적 지각은 아주 많이 있다

선택적 지각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답니다. 선택적 지각 덕에 우리는 삶에 작은 길들을 마련하며 살아갈 수가 있죠. 그렇기에 선택적 지각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우리가 하나의 선택적 지각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곤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지각을 정답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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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장님 코끼리 더듬기’라는 거 아시죠? 어떤 장님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길고 두꺼운 게 코끼리라고 하고, 어떤 장님은 코를 만지고 길지만 얇은 게 코끼리라고 하고, 또 다른 장님은 귀를 만지고 넓적하고 얇은 게 코끼리라고 하죠. 여기서 장님들이 직접 만진 것이 거짓말일까요? 아닙니다. 각각의 장님들은 다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정확하게 말했어요. 그럼 어디서 거짓말이 생긴 걸까요? 바로 자신이 만진 것이 ‘코끼리’라고, 자기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경험들은 거짓이 된 것이지요.

지금 나의 선택적 지각만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은 오답이 되지요.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구요? 사는 데 뭔 문제가 있냐구요? 당근 있지요. 이러 말 한 번쯤 해보신적 있지 않으세요? ‘넌 날 오해하고 있어’, 혹은 ‘어떻게 네가 그러니’라는. 이런 실망감에 빠져 보신 분들은 누구나 지금 자신의 선택적 지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설령 내가 정답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말이죠. 오해라는 거 그거, 뭔가 진실 된 게 있다고 여길 때 생기는 것입니다. 정답이란 게 없다면 오답도 없지 않겠어요?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지만, 세상은 우릴 속이지 않아요. 속이는 것은 오히려 우리죠. 지금의 선택적 지각을 정답이라 여기는 우리말이에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손에 쥔 몇 개의 패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선택적 지각 속에 있다는 것은 매일그 밥에 그 나물만으로 상을 차리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지금까지 알아 온 거,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거지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또 다음 날이고. 그렇게 살아온 관성대로 지금까지의 ‘나’란 사람의 테두리 안에서만 살게 됩니다. 지금의 선택적 지각 안에 있는 한, 지금 내가 가진 패밖에는 볼 수가 없답니다. 한 발짝만 벗어나면 내가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삶의 길들이 있음에도, 우리는 지금 내 손에 든 패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일에 힘들어하면서도, 다음에는 또 그 짓을 하고 있게 되는거죠(^^;;).

세상을 모두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지각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선택적 지각을 하지 않는 우리 역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선택적 지각을 하는 것이겠지요. 요로케 보고, 조로케 보기. 그렇기 위해서 항상 습관대로 보고, 습관대로 생각했던 것에 질문하기!

생명, 그 모든 상상력을 위하여

연재코너 <생명과 과학>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려 합니다. 생명에 대한 상상력, 생명이 주는 상상력, 그 모든 상상력을 통해 지금 우리가 가진 지각의 틀에서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기.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좀더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걸어갈 더 많은 길들이 보일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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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베스 해(海)의 심해 깊은 곳에서 사는 해파리들. 아름답다...!

이 글들은 주로 과학의 눈에서 이야기를 풀어갈 겁니다. ‘과학’이라고 하니까 생명에 대한 어떤 정답을 기대하고 계시다면 제발~ 그만 둬 주세요. 이 글들이 피하고 싶은 단 하나가 있다면 ‘정답이란 이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과학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명에 대한 정답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답은 너무 많다는 거, 그것을 알게 된 거, 그래서 사는 게 좀더 재미나진 것이랍니다.

요 재미를 위해 제가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는 글귀가 있답니다. 진짜 멋진 과학자 굴드의 말이지요.

생물의 문제에 대해 결정적이며 보편적인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연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사실 나는, 정직한 연구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러한 해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 우리는 작은 문제에 한해서라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중간 정도의 문제라면 웬만큼은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큰 문제들은 풍요로운 자연 앞에 무릎을 꿇는다.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무방향적이며 점진적인가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연의 다양성을 만끽할 것이지만, 확실성이라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괴물은 정치가와 목사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럼 이제 우주를, 자연을, 생명을, 삶을 만끽하러 가볼까요~(^^)



※ <생명과 과학> 연재코너를 시작합니다!

개봉박두! 앞으로 첫째주, 셋째주 수요일마다 신근영 선생님의 과학&생명 이야기가 찾아올 예정입니다. 머리 아픈 과학은 이제 그만~~ '나'라는 생명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자연과학의 놀라운 세계를 탐험하는 시간입니다. "우주를, 자연을, 생명을, 삶을 만끽할" 이 연재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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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오~ 기대되네요. 2012.02.09 15:42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그나저나, 저는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특정한 사고방식, 관성적인.. 두뇌회로에 따른 결정이나 사고등을 배제키 위해서 그리도 부단히(*^^*) 노력을 해왔건만, 결국엔 저도 제 사고틀.. 외부에서 주입됐던,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틀이던간에 그 사고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상태일까요? 상태..이겠지요?

    항상 제 머리속에선 리셋, 리셋을 외치고 셧다운(?)을 시키곤 했는데...
    어떤 고정관념이나 무개념을 배척하려 그리도 노력해왔는데...
    결국은 한 사회에 구성원, 한 인간에 불과하려나?

    하긴, 머리속에선 날고 기어도 정작 실생활에선 고정틀을 벗어나긴 어려우니까 뭐...

    • 북드라망 2012.02.09 16:21 신고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나는 어떤 고정관념, 혹은 주입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가를 보는 것부터가 먼저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생각 이전에 행동하는) 습관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세워나가는 것, 이게 아마 우리가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문장으로는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생명과 과학' 코너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