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어려움이 새로운 시대를 연다! - 수산건

by 북드라망 2015. 4. 9.


수산건괘, 

어려움이 새로운 시대를 연다!



수산건(水山蹇)은 어려움을 뜻하는 괘이다. 건(蹇)은 ‘절다’인데 파자를 하면 그 뜻이 더 다가온다. 한(寒_얼다)과 족(足_발)이 합해진 것으로 발이 얼어서 걷기 어려운 모습이다. 또한 건은 물(水)과 산(山)이 합해진 것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겪어야 함을 내포한다. ‘어려움’ 하면 괜한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살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다가오는 어려움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괜한 선입견으로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려움을 정면 대결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지 않을까.


산 넘고~ 물 건너~ 어려움을 겪는 법


요즘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는 책을 읽는 중이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쿠바가 불행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는 보통 어려움은 불행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통념일 뿐이다. 어려움은 그냥 어려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불행으로 연결하지 않는 지혜이다. 쿠바와 수산건괘는 여러모로 닮아있다. 쿠바가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고, 수산건괘도 어려움이 꼭 나쁜 것이 아니며 그때마다의 지혜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수산건괘와 함께 몰락한 쿠바가 어떻게 ‘몰락 선진국’이 되었는가를 찬찬히 풀어보려고 한다.



수산건 괘사


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 吉(건 이서남 불리동북 이견대인 정 길)

건은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이롭지 아니하며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 바르게 하면 길하리라.


彖曰 蹇 難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 知矣哉(단왈 건 난야 험재전야 견험이능지 지의재)

단에 가로되 건은 어려움이니 험한 것이 앞에 있으니, 험한 것을 보아 능히 그치니 지혜롭도다.


蹇利西南 往得中也 不利東北 其道 窮也(건리서남 왕득중야 불리동북 기도 궁야)

'건리서남(蹇利西南)'은 그 도가 궁함이요, '불리동북(不利東北)'은 그 도가 궁함이요,


利見大人 往有功也 當位貞吉 以正邦也(이견대인 왕유공야 당위정길 이정방야)

'이견대인(利見大人)'은 가서 공이 있음이요, 위(位)가 마땅해서 '정길(貞吉)'하다는 것은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이니, 건(蹇)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蹇之時用 大矣哉(건지시용 대의재)

건(蹇)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건이 서남보다 동북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물괘(☵)가 땅괘(☷) 변한 것으로 주역에서 땅은 서남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기존의 것들을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쿠바는 경제 봉쇄를 당했다. 하지만 쿠바는 가난하면 정신까지 피폐해진다는 통념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주역에서는 대인을 보면 이롭다고 했는데 쿠바 정부가 대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쿠바가 경제 봉쇄로 결핍을 호소했다면 몰락 쿠바로 전락했겠지만, 쿠바 정부는 기초적인 사회복지를 무시하지 않고 대담한 정책을 선택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만민을 위한’ 비전을 설정한 쿠바 정부. 그 비전을 끝까지 밀고 나갔기 때문에 쿠바만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것을 주역의 언어로 길하다고 한 것이다.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 길하리라.


새로운 길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역은 어려움의 건괘가 때와 쓰임이 크다고 했는데 쿠바가 어려움을 통해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창안해낸 것을 떠올리면 그 쓰임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象曰 山上有水 蹇 君子 以 反身脩德(상왈 산상유수 건 군자 이 반신수덕)

상에 가로되 산 위에 물이 있는 것이 건(蹇)이니, 군자가 이로써 몸을 돌이키고 덕을 닦느니라.


어려움을 건너기 위해서는 군자가 몸을 돌이키고 덕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역은 말한다. 그만큼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쿠바의 브레인들도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고전했다. 그들의 의사결정에서 기준이 된 것은 ‘지구와 공존하는 삶’이다.


경제 성장은 지구 환경적으로 한계를 넘는 것이고, 또 성장은 곧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하여 쿠바는 검소한 사회를 향한 반(反)성장을 추구하면서 물질적으론 빈곤하지만 공존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 군자의 덕이란 바로 공존의 삶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수산건 효사


初六 往 蹇 來 譽(초육 왕 건 내 예)

초육은 가면 절고 오면 명예로우리라.


象曰 往蹇來譽 宜待也(상왈 왕건래예 의대야)

상에 가로되 '왕건래예(往蹇來譽)'는 기다림이 마땅하니라.


초육은 시작으로 어려움을 처음 당한 때이다. 전과 다르게 눈앞에는 산과 물이 가로막혀 있는 형국. 이때 주역은 당장 가는 것은 어려우니 가지 말고 제자리로 오면 명예롭다고 말한다. 제자리로 온다는 것은 무엇일까. 쿠바를 다시 떠올려보자. 전 세계가 성장의 불구덩이에 빠져서 성장만을 갈구할 때 쿠바는 성장이 불가능한 경제 봉쇄에 처한 것이다. 쿠바는 분명히 초조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쿠바는 원점에서 사유를 시작한다.


원점에서부터 질문할 것!


만약 전 세계인구가 선진국처럼 된다면 3.5개의 지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삶을 창안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질문이 세계 유일의 지속 가능한 국가 쿠바로 탄생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렇다. 어려울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 오직 성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바로 이런 질문을 쿠바는 했고, 그 질문에 답하는 삶을 창안했다.


六二 王臣蹇蹇 匪躬之故(육이 왕신건건 비궁지고)

육이는 왕과 신하가 어려운데 어려운 것이(절고 저는 것이) 몸이 연고가 아님이라.


象曰 王臣蹇蹇은 終无尤也(상왈 왕신건건 종무우야)

상에 가로되 '왕신건건(王臣蹇蹇)'은 마침내 허물이 없으리라.


육이는 왕을 보필하는 신하의 자리이다. 왕과 신하가 힘을 합쳐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쿠바 정부는 성장을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오직 교육, 의료, 안전보장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요건을 위해 전력을 다할 뿐이다.


평등, 연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쿠바에서는 중시된다. 조건이 불리한 지역과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에 놓인 가정을 정부의 충실한 사회복지 정책이 도맡는다. 1990년대 심각한 경제위기도 연대의 정신으로 극복하고, 재정위기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제도는 중단 없이 유지됐다… 미국화가 아닌 길로서의 모델! 자유로우면서 격차 없는 사회의 실현! 

─요사다 다로,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서해문집, 43쪽

이것이 주역이 말하는 왕과 신하가 연대하여 만들어야 할 사회 비전이 아닐까 싶다.



九三 往 蹇 來 反(구삼 왕 건 래 반)

구삼은 가면 어렵고 오면 돌아오리라.


象曰 往蹇來反 內 喜之也(상왈 왕건래반 내 희지야)

상에 가로되 '往蹇來反'은 안에서 기뻐함이라.


구삼에서는 가면 어려우니 다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면 기쁨이 있다는 것. 쿠바의 비전이 모든 사람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인권이 탄압되는 자유 없는 독재국가라는 오명도 있었고, 경제가 파탄 나고 부정과 위법의 검은 경제가 발호하며 망명자가 끊이지 않는 빈곤국가라는 평도 있었다. 자유를 외치며 미국 이주를 꿈꾸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쿠바 현장에서 들은 시민의 목소리는 현 체제에 큰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에서 핫도그 점원으로 생활하다가 쿠바로 돌아온 자의 인터뷰 내용이다.

나를 보세요. 자동차도 컴퓨터도 없습니다. 물건들도 변변히 없습니다. 그렇지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치아까지 정부가 보험으로 관리해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전이 보장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요?

─요사다 다로,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서해문집, 84쪽

어려움을 피하려 미국으로 갔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삶이란 돈의 양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가 있음을 깨달아야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이리라.


다시 돌아가 시작할 수 있는 용기!


六四 往 蹇 來 連(육사 왕 건 래 연)

육사는 가면 어렵고 오면 이어지리라.


象曰 往蹇來連 當位 實也(상왈 왕건래연 당위 실야)

상에 가로되 '왕건래연(往蹇來連)'은 당한 위(位)가 실(實)함이라.


구사는 음으로 약하지만, 재상의 자리에 있다. 임금을 보필하면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지만 스스로는 그 어려움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낙심할 일은 아니다. 아래에 있는 구삼과 힘을 연대하여 왕을 보필하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쿠바 정부의 비전이 아무리 선명하더라도 그것을 쿠바인이 따르지 않는다면 지금의 쿠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쿠바국민은 정말 자율적이다. 먹을 것을 재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빈민이나 홈리스가 없도록 NGO 활동도 적극적이다. 생존에 필요한 부동산은 절대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집을 사고 팔 때도 자신의 집을 설명하는 간판을 들고 나와 서로 얘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는 진풍경을 펼치기도 한다. 건축가는 돈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하는 등 삶의 질 면에서는 어떤 나라도 따라갈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정부와 국민의 비전이 공유될 때 불가능한 일도 가능할 수 있음을 쿠바는 잘 보여주고 있다.


九五 大蹇 朋來(구오 대건 붕래)

구오는 크게 어려움에 벗이 오도다.


象曰 大蹇朋來 以中節也(상왈 대건붕래 이중절야)

상에 가로되 '대건붕래(大蹇朋來)'는 가운데한 절도로써 함이라.


구오는 임금으로 어려움의 책임을 가장 느끼는 자리이다. 정말 어려울 때 돕는 사람이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구오가 어려움에 부닥치자 친구가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냥 어렵다고 친구가 오는 것은 아니다. 구오가 중절(中節)을 지키기 때문에 그 뜻을 아는 친구들이 함께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은 지구 환경적으로 한계를 넘었다. 이제 세계는 딱히 더 필요한 것이 없는 세상이 되었고, 이런저런 모델을 바꾸는 머니게임에 질력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최대의 낭비라 할 전쟁 말고는 더 수요를 창출할 방법도 상실한 채 세계는 길을 잃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을 눈치챈 나라들이 이제 성장이 아니라 반성장의 삶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석유를 낭비하지 않는 풍요로운 몰락! 그것을 쿠바가 살아내고 있음을 목격했고 그 삶을 함께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할 때는 친구가 필요하다.


上六 往 蹇 來 碩 吉 利見大人(상륙 왕 건 래 석 길 이견대인)

상육은 가면 어렵고 오면 큼이라. 길하리니,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라,


象曰 往蹇來碩 志在內也 利見大人 以從貴也(상왈 왕건래석 지재내야 이견대인 이종귀야)

상에 가로되 '왕건래석(往蹇來碩)'은 뜻이 안에 있음이요, '이견대인(利見大人)'은 귀함을 좇음이라.


이제 어려움의 끝에 도달했다. 가면 어렵고 오면 크다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방심하면 더 어려워진다는 말일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시종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야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쿠바 혁명 정부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과 의료, 사회보장 제도 개혁과 나란히 주택 개선에 최선을 다했다.


어떤 선진국이라도 홈리스가 없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쿠바는 홈리스는 한 사람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실제로 쿠바에는 빈민가나 홈리스가 따로 없다고 한다. 쿠바인에게 이런 의지를 표명하는 쿠바 정부야말로 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쿠바는 경제 봉쇄 이후 석유수입이 반감되는 험한 어려움에 빠졌다. 쿠바는 기존의 에너지 사용 방식을 그치고 절약과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한, 전문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전 국민의 전문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이것은 에너지 혁명뿐 아니라 의식혁명까지 염두에 둔 노력이었다. 사실 교육은 시간이 많이 들고 지성을 끌어내야 하므로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른 것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므로 쿠바 정부는 보육원 때부터 아이 인생에 행동의 변화를 이루어 내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이 '대인을 보아 귀함을 쫓는다.'에서 쫓아야할 귀함이 아닐까. 생태계와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


어려움은 불행이 아니다. 쿠바가 어려움을 기회로 삼아 지구에서 유일하게 지속한 삶이 가능한 나라가 되었듯이. 그들은 끝까지 다음과 같은 비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몰락 선진국(?)'이라는 이름을 달면서도 쿠바가 옳았다는 전세계적인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리라.

1990년대에 쿠바는 석유 없이 사는 것을 배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석유 없이 생활하는 것이 삶의 종말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준 자연을 걱정하고 보호하며 회귀해야 할 때’라는 것을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 포스트 석유 시대가 됩니다.

─요사다 다로,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서해문집, 103쪽

이것이 쿠바와 수산건괘가 알려준 어려움을 기회로 만드는 지혜일 것이다.


글_박장금(감이당)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