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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해완's MVQ

자연의 로맨틱한 비밀, 오로라를 쫓아서

by 북드라망 2015. 2. 27.


쫓아서






이번 겨울, 나는 좀 특별한 여행을 했다. 여행 앞에 ‘특별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식상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건마는, 그래도 참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고 꼭꼭 눌러쓰고 싶다. 모두가 따뜻한 남부 마이애미로 떠나는 겨울 휴가철,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미국 최북부 알래스카를 향해 비행기를 탔다고 말한다면 좀 남다르게 들리려나. (^^) 나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오로라를 보겠다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가 원해서 길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마살 없는 사주 때문인지, 나는 이전까지 항상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계획에 무임승차하는 식으로 여행을 했다. 이 뉴욕행도 MVQ 프로젝트의 시작과 고미숙 쌤의 ‘뉴욕 한 번 가 봐~’라는 강력한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무슨 용기로 뜬금없이 오로라를 보겠다고 나선 것일까? 이것은 바로 책의 힘이었다.



연극 대본의 힘


몇 달 전, 헌터 칼리지에서 연극반에 참여했을 때 한 대본을 읽었다. (연극반 이야기는 이 코너에도 연재했었다^^) 이 연극은 여덟 개의 짧은 사랑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씬이 공통적으로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 오로라가 나타난다.


나는 이 로맨틱 코미디 대본과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사랑스럽게’ 포장하기보다 오히려 그 순간의 어색한 침묵, 몸짓, 말투를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관객을 웃음 터뜨리게 하고, 그 와중에도 한 사람 사람의 떨리는 진심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사랑이라는 특별한 마법이 일어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이 메시지에 설득당했던 까닭에는 인적 드문 숲 오로라라는 배경이 큰 몫을 했다. 오로라의 마법! 극작가 존 캐리어니는 오로라 역시 원자들이 떨리고 부딪히면서 발생되는 결과라고 말한다. 나는 이 남자의 비유법에도 사랑에 빠졌다. 로맨틱한 TV 드라마가 아니라 로맨틱한 자연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오로라를 연출하는 원천은 바로 태양광이다. 이 태양광은 11년 주기로 강해지는데, 올해 겨울이 바로 그 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운명일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오로라를 보러 가겠는가? 그렇게 부랴부랴 알래스카 여행단이 꾸려졌다.


그렇다고 이를 목적 있는 여행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오로라는 철저하게 예상불가능한 천체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오로라가 우리가 알래스카에 머무는 그 3일 안에 나타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에도 내가 과연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릴 적 읽었던 무지개를 쫓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렇다, 이것은 오로라를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오로라를 ‘쫓아가는’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 해도 여행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 여행에는 가슴 따뜻한 연극 대본과 우리가 무대 위에서 그렸던 오로라에 대한 상상이 이미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


여행의 첫날, 꼭두새벽에 공항에서 만난 나와 친구들은 무언의 흥분을 공유했다. 마치 우리가 기사 소설을 읽고 신이 나서 서재를 박차고 나간 돈키호테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씨애틀, 고난의 연속


실제 여정도 시작만큼이나 환상적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우리의 여행은 오로라처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알래스카로 가는 길목에 씨애틀에 들려서 며칠 구경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씨애틀은 우리와 무슨 악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사고가 끊임없이 터졌다. 3인용인 줄 알았던 호텔이 사실은 2인용이었다. 씨애틀 공항이 뉴욕 공항과는 다르게 대기 시간을 잰다는 것을 모른 채 여유만만하게 공항에 도착했다가 알래스카행 비행기를 놓쳤고, 뉴욕으로 돌아올 때는 미국 동북부를 강타한 눈폭풍 때문에 모든 비행기가 취소되어 씨애틀에 삼 일 추가로 발이 묶였다. 




무엇보다, 10일 간의 긴 여행에서 서로에 대해 감정이 틀어져버리면 이것만큼 골치 아픈 문제는 없다. 나는 특히나 더 곤란한 입장에 놓였는데, 이 알래스카 삼인방 중 한 명은 내 남자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나는 친구가 커플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썼고, 원래 민감한데다 여행의 피로감 때문에 세 배 더 민감해진 남자친구는 이때마다 불쑥불쑥 신경질을 내었다. 삼 일차 되던 날 나는 커플들이 왜 여행에 갔다가 깨지곤 하는지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저 면상이 꼴도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여행 중인지라 24시간 중 잠깐이라도 도망칠 시간이 없었다. 결국 나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저 인간을 잘 달래서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겠노라고 결심했다. 오로라를 보러 가기 전 마음 수행까지 한 셈이다.


속 쓰린 내 마음에 씨애틀의 커피를 들이부었다. 스타벅스의 고장답게 제대로 된 커피를 내려주는 근사한 커피샵들이 코너마다 서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씨애틀은 상당히 흥미로운 도시였다. 씨애틀의 도시 분위기는 이완되었으면서도 약간 퇴폐적이다. 저녁 6시가 되면 바를 제외한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불 꺼진 상점 주변에는 대마초 향을 폴폴 풍기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린다. 이런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까 나중에는 별로 신경도 안 쓰인다. 그 틈새에 예술가들이 차린 가게도 꽤 많다. 코트 커베인과 지미 핸드릭스는 이런 환경에서 자란 것일까? 미국이 낳은 이 위대한 두 음악가는 모두 씨애틀 출신이다. 씨애틀 사람들은 동부가 아닌 서부에 음악 씬의 뿌리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콘크리트 정글이 아니라, 고개를 들면 바다의 짠내가 나고 한 발짝 걸어가면 알래스카 고속도로와 만나는 이곳에.





자연의 로맨틱한 비밀


우리 삼인방은 퇴폐는커녕 체력이 퇴화(?)하고 있었다. 다들 지쳐 있었다. 우리는 알래스카 고속도로가 아니라 알래스카 비행기를 탔지만, 예정되었던 항공기를 놓치는 바람에 오로라 투어를 신청했던 첫 번째 밤도 물 건너 갔다. 오로라를 정말 볼 수나 있는 것일까? 가는 길 내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번째 날, 우리는 오로라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희끄무레한 색이 구름처럼 밤 하늘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 이상은 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밤, 알래스카를 떠나기 여덟 시간 전, 드디어 때가 왔다. 숲 속 롯지 안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초록빛의 커튼이 하늘 위로 스물스물 나타났던 것이다. 헉! 우리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뱉었다. 우리가 전생에 손톱만큼이라도 복을 지은 모양이었다. 대륙 끝에서 끝까지 날아온 게 헛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로라는 두 시간 동안 모양을 바꿔가면서 하늘에 머물렀다.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오로라를 바라보던 순간은 내가 상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일단, 그 과정은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오로라에 집중하려고만 하면 얼어붙은 발가락이 비명을 지르면서 방해했던 것이다. 영하 40도의 맹추위!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한 추위를 뛰어넘는 어떤 역설이 있었다. 칠흑 같은 하늘에서는 별들이 쏟아져 내렸지만, 그 칠흑이 내 주위를 꽉 채우고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 아름다운 동시에 너무 무서웠다. 나 자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은 오로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바깥 벤치에 앉아 추위를 견뎌보았다. 나는 나무의 파도에 둘러싸인 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아니, 나는 ‘혼자’가 아니라 처절하게 자연의 일부였다. 나 자신이 빽빽히 서 있는 나무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누구도 모를 것이 이 아름다운 자연도 티끌 하나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납득되었다. 죽음의 경계가 콧구멍 밑까지 느껴지는 혹한, 그 위로 오로라가 마법처럼 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밤마다 이 환상적인 공연의 빛을 받고 자라는 것이다.




극작가 존 캐리어니는 연극의 배경이 된 마을에서 자랐다. 메인(Maine) 주 북부 깊은 숲 속 마을에서 그는 일 년에 한 두 번씩 오로라를 목격했다. 그가 왜 로맨틱 스토리를 썼는지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불모’와 ‘혹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땅에도 원자들의 부딪힘이 있다는 것. 바로 이 비밀이 로맨틱한 것이 아닐까. 하루 여섯 시간밖에 볕이 내리쬐지 않는 알래스카지만 밤이 되면 태양은 이 땅에 새로운 신호를 보낸다. 인구 밀도가 희박한 메인 숲 속, 몇 안 되는 외로운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움텄던 캐리어니의 연극처럼.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그에 비해 내 옆에서 이를 덜덜 떨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이 남자와의 로맨스는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나는 또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 반성이 들어 조용히 마음을 고쳐먹었다. 좋은 광경 보고 있는데 마음을 못 되게 쓰면 안 되지. 이 특별한 여행은 내 바람대로 무사히 끝났다. 나의 로맨스에도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를!




글/사진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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